MIT 출신 양부호 모벤시스 의장이 창업
반도체 장비서 30년 갈고닦은 모션 제어
이젠 로봇과 피지컬 AI 실행 계층 정조준
공장 안 기계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반도체 웨이퍼를 집어 옮기고 로봇 팔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 움직임을 일일이 지시하는 장치가 있다. 모션 제어기다. 지금까지 이 일은 전용 하드웨어가 맡았다. 장비 옆에 제어 보드를 따로 붙이고 거기에 모터 축을 연결하는 식이다. 문제는 확장이다. 축을 하나 더 쓰려면 보드를 바꾸거나 새로 달아야 한다. 기능을 추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모벤시스는 이 보드를 걷어낸다. 하드웨어가 하던 일을 컴퓨터 안의 소프트웨어로 옮기는 것이다. 회사는 이를 소프트웨어 정의 모션 제어(SDMC,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가 움직임을 지시하는 방식)라고 부른다. 말이 어렵다면 휴대폰을 떠올리면 된다. 예전 피처폰은 기능을 바꾸려면 기기를 새로 사야 했다. 스마트폰은 앱을 깔고 업데이트만 하면 된다. 회사가 직접 든 비유도 이것이다. 실제로 주력 제품 WMX는 축이나 기능을 늘릴 때 보드를 새로 사는 대신 라이선스를 추가하면 된다.
보스턴에서 창업해 일본 거쳐 한국으로

모벤시스는 PC 한 대로 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기술로 글로벌 고객을 확보했다. (모벤시스)
시작은 연구실의 짜증이었다. 창업자인 양부호 이사회 의장은 MIT 기계공학과에서 로봇 제어를 연구했다. 직접 짠 알고리즘을 로봇에 넣어 돌려보려는데 번번이 막혔다. 당시 제어기는 전용 하드웨어 중심의 닫힌 구조였다. 제조사가 열어준 기능만 쓸 수 있으니 연구자가 원하는 대로 바꾸기 어려웠다. 그래서 아예 제어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만들어봤다. 교토대 수리공학과에서 이론과 소프트웨어를 공부한 경험이 여기서 쓰였다. PC로 로봇을 움직이는 프로그램이 돌아가자 연구실을 찾은 일본 기업 관계자들이 눈을 반짝였다. 연구용 도구가 공장의 문제를 푸는 제품이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1998년 지도교수와 함께 미국 보스턴에서 창업했다. 당시 PC 성능이 해마다 좋아지는 것을 보며 결국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 영역을 가져갈 것으로 봤다. 이후 일본 로봇 전시회에서 수요를 확인하고 일본으로 거점을 넓혔다. 제조업이 깐깐한 일본에서 고객 요구를 받아내며 제품을 다듬었다. 2014년에는 한국법인을 세웠다. 한국 반도체 장비 산업이 커지던 시기와 맞물렸다. 사명 모벤시스는 움직임을 뜻하는 라틴어 모벤스(movens)와 시스템(system)을 붙인 말이다.
투자도 꾸준히 받았다. 2020년 국내 사모투자회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했고 2023년에는 일본 미쓰비시전기가 전략적 투자자로 들어왔다. 단순한 돈이 아니라 글로벌 판매망을 함께 끌고 온 투자였다.
고객이 많이 팔수록 같이 버는 구조
기자가 가장 궁금했던 건 돈 버는 구조다. 소프트웨어를 한 번 팔고 마는 장사라면 성장에 한계가 있다. 모벤시스의 답은 라이선스다. 고객 장비에 WMX를 얹을 때 라이선스를 공급하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같은 장비 모델이 추가로 생산되고 팔릴 때마다 라이선스가 계속 따라 들어간다. 회사는 이를 ‘파이프라인형 수익 구조’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고객사가 장비를 많이 팔수록 모벤시스 매출도 함께 늘어난다. 그러니 적용 모델과 고객 기반을 넓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객이 원하면 소프트웨어에 산업용 PC 같은 하드웨어를 묶어 팔기도 한다.

WMX를 적용한 데모사진. (모벤시스 제공)
주력 무대는 반도체 장비다. 소프트웨어로 모션을 제어하는 기술 자체는 해외에서도 오래 다뤄온 분야다. 그렇다면 승부는 어디서 갈릴까. 양산 장비가 요구하는 정밀도와 안정성을 매번 맞춰내는 일이다. 연구실에서 한 번 되는 것과 공장에서 1년 내내 되는 것은 다르다. 결국 기술력에 현장 경험이 붙어야 한다. WMX는 최대 128개 축을 CPU 하나에서 소프트웨어로 맞물려 돌린다. 관련 기술은 국내외 등록특허로 지키고 있다.
다음 카드는 WMX 울트라다. HBM 같은 첨단 패키징을 겨냥한 제품이다. 칩을 여러 장 쌓아 붙이는 공정에서는 미세한 어긋남도 불량으로 이어진다. 열 압착 본딩이 고도화되고 하이브리드 본딩이 들어오면 장비를 더 정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다만 회사도 신중하다. “앞으로의 기여도는 고객 장비에서의 검증과 채택을 통해 확인돼야 한다”는 것이 회사 설명이다.
인텔 서밋서 PC 한 대로 시연

2026년 5월 대만 인텔 행사에서 양부호 모벤시스 의장이 컨퍼런스 발표를 진행하는 모습. (모벤시스 제공)
요즘 화두인 피지컬 AI에서 모벤시스가 서 있는 자리는 분명하다. 회사는 피지컬 AI를 인지와 판단, 실행 세 단계로 나눈다. 모벤시스가 맡는 건 맨 마지막 실행이다. 왜 실행이 문제가 될까. 시뮬레이션에서 백발백중이던 로봇이 실제 라인에 들어가면 덜덜 떨거나 엇박자를 내며 멈춰 선다. 업계에서 심투리얼 갭(Sim2Real Gap, 시뮬레이션과 실제 현장의 성능 격차)이라 부르는 현상이다. 양 의장의 표현이 재미있다. “아무리 뛰어난 두뇌를 가져도 신경계가 부실하면 몸치가 될 수밖에 없다.”
시간 단위를 대보면 금방 이해된다. AI가 상황을 보고 판단을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100~500밀리초다. 1밀리초는 1000분의 1초다. 그런데 로봇 관절이 떨지 않고 부드럽게 움직이려면 제어 주기를 0.5~1밀리초로 지켜야 한다. AI가 “저쪽으로 가라”고 한 번 지시하는 동안 아래쪽에서는 모터를 어떻게 돌릴지 수백번 다시 계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AI의 명령이 외부 제어기를 거치고 통신망을 타고 로봇까지 가는 사이 시간이 조금씩 샌다. 양 의장이 기존 하드웨어 제어기를 두고 블랙박스(제조사가 열어준 기능만 쓸 수 있는 닫힌 구조)라고 부르는 이유다.
해법은 단순하다. 중간에 거치는 정거장을 없애는 것이다. AI 추론과 로봇 제어를 산업용 PC 한 대 안에서 같이 돌리면 된다. 모벤시스는 지난 5월 29일 대만에서 열린 인텔 엣지 솔루션 서밋 2026에서 이 구상을 꺼내 보였다. 인텔 공식 초청으로 단독 세션과 시연 부스를 열었다. 인텔 코어 울트라 시리즈 3를 얹은 PC에 WMX를 돌리고 여기에 인텔의 AI 추론 최적화 도구 오픈비노(OpenVINO)와 연산 순서를 시간에 맞춰 조율하는 TCC 기술을 붙였다. 시연은 보드게임이었다. PC 한 대가 주사위와 말의 위치를 눈으로 읽고 같은 칩 안에서 곧바로 로봇 팔의 경로를 만들어 말을 옮겼다. 양 의장은 “가상 환경의 판단 데이터를 현실의 물리적 동작으로 얼마나 오차 없이 옮기느냐가 피지컬 AI의 본질적 과제”라고 말했다.
엔지니어가 ‘WMX’를 장비에 적용해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 (모벤시스 제공)
개발자를 끌어들이는 장치도 깔아뒀다. 그동안 로봇 제어는 C 계열 언어로, AI 개발은 파이썬으로 갈려 있어 둘을 붙이기가 까다로웠다. WMX는 C와 C#, 파이썬을 모두 받는다. 로봇 개발에 널리 쓰는 ROS 2(로봇 소프트웨어 개발용 공개 플랫폼) 연동 창구는 무료로 풀고 핵심 엔진만 라이선스로 판다. 연구개발 단계에서는 한 번에 6시간까지 공짜로 돌려볼 수 있지만 실제 생산에 쓰려면 돈을 내야 한다. 문턱은 낮추되 돈 되는 구간은 지키는 설계다. 최신 버전 WMX3는 엔비디아의 로봇 시뮬레이션 플랫폼 아이작 심(Isaac Sim)과도 연결했다. 자회사 스카일라로보틱스의 자율주행 항법을 엮은 이동형 협동로봇 스카일라 웨이브(Skylla WAVE)도 내놨다. 반도체 패키징과 테스트를 맡는 외주 전문기업(OSAT) 현장의 물류 자동화가 적용 분야다.
해외는 파트너와 함께 간다. 미쓰비시전기와는 모션 제어 사업에서 손잡았고 어드밴텍과는 제품과 기술을 연계했다. 기술만으로는 글로벌 고객에 닿기 어려우니 파트너가 이미 가진 판매망에 소프트웨어를 얹는 방식이다. 모벤시스는 상장도 준비 중이다. 일정은 조율 단계다. 회사는 상장을 목표가 아닌 출발점으로 본다. 반도체 장비에서 30년 가까이 다듬은 모션 제어 플랫폼을 로봇과 피지컬 AI라는 더 큰 시장으로 가져가기 위한 발판이라는 뜻이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첫째는 보수적인 제조 현장이다. 하드웨어 제어 방식은 수십년간 공장 자동화의 철칙이었다. 잘 돌아가는 라인을 뜯어고치려는 공장은 많지 않다. 양 의장도 “모든 설비를 당장 교체할 수는 없다”고 인정한다. 결국 정밀도와 속도가 동시에 필요한 구간부터 하나씩 증명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둘째는 WMX 울트라다. HBM 공정에 들어가려면 고객 장비에서 검증을 통과해야 하는데 아직 개발 단계다. 셋째는 개발자 생태계다. 6시간 무료 정책으로 문턱은 낮췄지만 이것이 실제 라이선스 매출로 얼마나 이어질지는 이제부터 볼 일이다. 피지컬 AI의 승부처가 지능에서 실행으로 옮겨간다는 양 의장의 진단이 맞는다면, 모벤시스가 서 있는 자리는 나쁘지 않다.